문이 스르르 열리는 소리에 남자는 눈을 떴다. 살그머니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함께 들렸다.
남자는 머리맡에 놓은 칼을 집어 들었다. 어둠속에서 서슬퍼런 날에 빛이 번뜩이고,
그의 얼굴을 칼빛이 비추는 순간 그 남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드디어 방문이 열리자 낯선 그림자의 사내는 방문앞에서 멈춰선채 두리번 거렸다.
칼을 집어 쥔 사내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꼭 너같은 놈들이 있단 말이야. 안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는데 잘되었지 뭐..."
한손에 칼을 쥔 채 여유롭게 말했지만 떨림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다시금 칼을 쥔 사내는 낯선 그림자의 사내에게 말했다.
"네가 들고있는 그 칼은 내가 어릴적 처음 쥐었던 녀석과 비슷하군.
그런 칼은 손잡이가 약해서 칼이지, 근데 그거 아나? 그 칼로는
뼈속까지 찌르긴 힘들다고, 그러니 다음에는 더 좋은 칼을 들고 다니라고.
물론 앞으론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말을 하면서 남자는 여유롭게 낯선 그림자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낯선 그림자의 사내는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하면서 반쯤 얼어버린채
뒷걸음을 눈치 못채게 치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금 사내는 말을 내뱉었다.
"이집을 둘러본 적이 있나? 이집은 벽지가 없어, 다 타일로 되어있지. 그 이유를 아나?"
낯선 그림자의 사내는 궁금했지만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너 같은 녀석들이 들어오면 난 이 칼을 쓰는데, 칼을 쓰다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거든
벽지라면 치우기 힘들겠지만, 타일이라서 물청소만하면 되니 무척 편하단말이야."
남자의 말이 끝나면서 입가에 미소가 퍼지는 순간 외마디 기합소리와 함께
사내의 칼이 낯선 그림자의 사내를 향해 허공을 갈랐다.
놀란 낯선 그림자의 사내는 오른손으로 막으려했지만 막기는 커녕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칼과 함께 그의 손목이 떨어져 나갔다.
잘린 손목에선 피가 솟구쳐나기 시작했다.
사내의 서슬퍼런 칼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겁을 먹고 솟구치는 피를 주체못하던
낯선 그림자의 사내는 서둘러 출구를 찾으려했지만 등을 돌리면서 허벅지도 깊게 베였다.
손이 모자란 사내는 출혈을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한채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사내에게
선처를 바라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말도 입밖으로 내지 못한채 실낱같은
신음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사내는 벙어리였을지도 모른다.
사내는 그런 낯선 그림자의 사내를 아무런 감정없이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 전에도 너 같은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는줄 아나? 사지가 잘린채
내방을 뒹굴었었지. 그래도 목은 붙여놨다네. 피를 너무 많이 쏟아서 목을 잘라도
피가 솟구치지 않으니 영 흥이 나지 않자나? 그렇게 잘린 덩어리들을 정원에 심지.
한덩이는 사과나무에 한덩이는 대추나무에... 거름으로 딱이거든."
남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암튼 자네 덕에 올해도 맛있는 사과를 먹게 되었군."
피를 잔뜩 쏟아낸 낯선 그림자의 사내는 창백한 표정으로 죽어가기 시작했고,
사내의 허공을 가르는 칼질이 몇번 더 있고선 날이 밝았다.
남자는 칼을 잘 닦아서 다시 머리맡에 놓고는 덩어리로 나뉜 시신을
주섬주섬 주워서 창고로 향했다.
6개월이 흐른 뒤...
사내의 집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을 불러모신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저녁을 다 먹자마자 사내는 후식으로 미리 따 놓은 탐스러운 사과를 내놓았다.
모인 이들은 부끄러움을 타는 처녀의 볼같이 붉은 사과에 시선이 모아졌고,
서로 다투듯이 사과를 집어들고는 한입씩 베어물었다.
껍질은 잘 익은 베이컨마냥 아삭거리면서 속살은 샤베트처럼 시원달콤했다.
모두들 놀란 듯 사과를 입에 문채 서로를 쳐다보고 눈을 휘둥그레떴다.
사내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지난 봄부터 피와 땀으로 거둔거라 맛이 좋습니다. 어때 맛이 괜찮습니까?
참으로 많은 피와 땀이 들어간 귀한 겁니다."
남자의 말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신 사내의 사과를 칭찬하기 바빴다.
이날 모인 이들은 사과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실하게 익어가는 대추를
바라보면서 대추를 딸 때면 꼭 불러달라고 사정아닌 사정을 해댔다.
흔쾌히 허락을 하면서 큰 웃음을 보이던 사내는 다짐을 한다.
내년에는 사과나무와 대추나무를 더 심어야겠다고...
- 사과, 사과나무와 타일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글. 수정할 부분이 많지만, 처음 느낌그대로...
훗날 사과맛이 그리울때 수정하리라 생각하면서 남겨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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